경종(1688년 11월 20일 ~ 1724년 10월 11일)은 숙종과 희빈장씨의 아들로 태어난 조선 20대 왕입니다.
일생
1690년 경종이 왕세자로 책정되면서 이복동생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과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간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갈등으로 소론은 권력에서 쫓겨났고 경종시대에는 파벌싸움이 정점을 찍었습니다.
1720년 숙종이 사망한데 이어 31세 때 이윤세자가 경종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1720년 숙종이 사망할때 이이명에게 연잉군을 경종의 후계자로 지명하라고 한것으로 추정되는데 노론의 적이었던 소론 사이에 역사학자나 기록이 없어 의혹이 생겼습니다.
경종은 재위기간 동안 몸이 안좋아졌고 노론은 이복형인 연잉군을 지지하여 경종을 퇴위시키려 압력을 가했습니다. 즉위 두달 뒤에 왕의 건강이 나빠져 국정을 운영할 수 없게 되자 연잉군을 세자로 책봉하였습니다.
경종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어머니인 희빈장씨가 원인이었다고 하였습니다. 1701년에 사약을 받을것으로 선고받았는데 판결 후 희빈장씨는 아들(경종)을 만나고 싶다 간청하였고 경종에게 달려가 하복부에 중상을 입혀 불임으로 만들게 되었고 후사를 만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종은 건강이 너무 약해서 재위 4년동안 어떠한것을 할 기운도 없었습니다.
이로인해 권력투쟁이 격화되어 참변인 신임사화로 이어졌습니다. 노론은 왕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소론은 이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습니다. 다시말해 노론세력이 권력을 찬탈한다고 주장하여 노론의 세력을 많이 제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소론은 궁궐을 배회하고 있는 흰여우 사냥을 빌미로 왕세제(연잉군)를 암살하려 했으나 인원왕후가 그를 비호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4년간의 두번의 대 학살이 있었는데 하나는 집권세력이었던 소론이 1721년 경종 1년에 멀쩡하게 건강하게 있는 왕을 두고 이복동생인 연잉군에게 몸약한 왕인 경종 대신에 국정을 운영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노론을 소탕한것으로 신축옥사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재위 2년인 1722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노론의 어린 자제들이 왕을 살해하고 이이명을 옹립하려한다 라는 고변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소론 강경파들은 노론의 숙청을 경종에게 강하게 주장했고 경종은 소론의 말을 들어 경종 말년까지 소론 세력이 집권하며 노론세력을 망명시키거나 처형하게 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임인옥사라 부르고 이 두 사건을 신임사화라 부르고 있습니다.
경종은 재위기간동안 서양의 무기를 본떠 소총을 만들고 남부지역의 토지 측량제도를 개혁했습니다.
죽음
소론은 이복동생인 연잉군에게 먼저 왕위를 물려주려는 노론의 시도로 경종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것이라고하는 추측도 있었지만 연잉군이 올린 간장게장을 먹고 이상이 생겨 사망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또한 비만이고 여러가지 병이 많았던 터라 정확한 사인을 알기는 어려울것이었습니다.
경종은 1724년 즉위 4년만에 사망하였고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에 부인인 선의왕후와 같이 묻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