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나라의 왕 들

인종과 명종

by 붕스 2023. 9. 12.

인종

인종(1515년 3월 10일 ~ 1545년 8월 8일)은 조선시대 12대 왕이며, 아버지는 중종, 어머니는 장경왕후이며 대윤파의 윤임이 숙부이다. 1520년 세자로 책봉되고 1544년 중종이 사망한 뒤 왕위를 계승합니다.

 

명종보다 먼저 사망하게 된 아들 순회세자의 묘인 서오릉

 

일생

인종은 어렸을때는 남곤에게 보호를 받았고 남곤이 죽은 후 중종의 특별한 아들이었으나 자신의 아들인 복성군을 왕으로 만들려는 경빈 박씨의 견제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1527년 죽은 쥐의 사지를 훼손해 불에  태워 동궁전 창문에 매달아 세자를 저주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작서의 변'이라 부르고, 이 사건의 배후에 인종의 배다른 형인 복성군과 경빈박씨가 있는것으로 밝혀져 폐서인되게 되었습니다. 또한 1533년 동궁 빈청의 남쪽에서 세자를 저수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복성군 모자와 혜정옹주의 남편이 연루된것으로 알려져 경빈 박씨의 두 딸인 혜순옹주와 혜정옹주 또한 폐서인되었습니다. 복성군과 경빈 박씨가 사사되고나서 후에 이 사건의 배경은 인종의 누이 효해공주의 남편 김희와 그의 부친인 김안로가 연루된것으로 밝혀졌고 인종은 중종에게 복성군과 모친의 신분을 회복하고 두 옹주의 칭호도 회복하게 해줄것을 요청했습니다.

 

젊었던 왕은 매우 야심적이어서 중종이 통치 중 실패한 개혁의 유산인 부패가 만연했던 당시의 정부를 개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519년 '3차 문인숙청' 때 죽은 조광조를 신원하고 현량과를 부활시키는 등 성리학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재현하려 노력했고 사림파들을 모았습니다. 외숙부인 대윤의 윤임은 이 기간에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종은  잦은 질병으로 즉위한지 1년만인 1545년 사망했습니다. 윤임은 1545년 '을사사화'라고 불리우는 '제4차 문인숙청'에서 소윤 윤원형에의해 처형당하고 명종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죽음

일부 역사학자들은 인종이 인종의 이복동생을 왕위로 모시기 위해 소윤의 윤원형 무리에게 독살되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인종의 계모인 문정왕후가 수십년동안 인종을 증오하고 괴롭혔으나 인종은 문정왕후를 극진히 어머니로 모시고 경원대군과도 친하게 지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야사에서는 인종의 죽음에는 독살설이 있기도 했는데 그렇게 포악스럽던 문정왕후가 인종이 아침에 문안인사를 드리러가자 어머니만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미소를 띄고 있었고 인종은 이를 문정왕후가 자신을 아들로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문정왕후가 준 오색 떡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고 의심의 여지가 있을 정도로 천천히 병에 걸렸고 인종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불과 3일 전이었습니다.

 

인종은 1545년에 사망하게 되고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현재 효릉이라 불리는곳에 부인이었던 인성왕후와 나란히 묻혀있습니다. 

 

 

명종

명종(1534년 7월 13일 ~ 1567년 8월 12일)은 조선시대 13대 왕입니다. 중종과 문정왕후의 둘째아들로 문정왕후가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즉위전에는 경원대군이었으며 인종이 즉위 할때까지만 해도 인종의 이복동생이었으나 1545년 이복형인 인종이 사망하고 12살에 즉위하며 문정왕후는 너무 어린 명종이었기 때문에 수렴청정을 시작했습니다.

 

일생

명종이 즉위할 당시에는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의 대윤파와 역시 외삼춘인 윤원형과 윤원로의 소윤파가 있었습니다. 1544년 중종의 뒤를 인종이 계승하면서 윤임의 대윤파가 세력을 잡았었지만 문정왕후가 반대파인 소윤파를 비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완벽하게 없애진 못했습니다. 

 

1545년 인종이 사망한 뒤 소윤은 대윤을 대신하여 세력을 쥐게 되고 1545년 '을사사화'인 '제 4차 문인숙청'에서 대윤을 잔인하게 처리했습니다. 대윤파의 수장인 윤임은 처형되었고 많은 무리들이 처형되었습니다.

 

소윤파는 대윤파를 계속 공격했습니다. 1546년 윤원형은 같은 소윤파였고 형이었던 윤원로를 탁핵하고 그 일당을 모두 처형했습니다. 윤원형은 1548년 이조판서, 1551년 좌의정, 1563년 영의정까지 아무 반대 없이 승승장구했습니다.

 

윤원형의 폭정에도 불구하고 문정왕후는 양반들이 소유했던 토지를 백성에게 재분배하는 등의 정치를 계속 했고 명종이 20세가 되던 해에 문정왕후가 스스로 수렴청정을 거두게 되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그녀였지만 그 뒤부터는 정사에 크게 개입하거나 명종의 정책을 참견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왕의 말들이 수렴청정을 그만 둔 대비에게 바로바로 전달이 되었다는것은 문정왕후가 완전히 정치에서 물러난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1565년 문정왕후가 사망한 후 명종은 자신이 통치하기를 결심하고 어마무시한 권력을 갖고있는 숙부 윤원형과 그에 못지않은 권력을 휘둘렀던 윤원형의 둘째부인인 정난정을 처형했습니다. 윤원형은 나라를 썩게 만들었던 근본이었습니다.

조정이 불안정한동안 여진족과 왜구가 다시 창궐하여 조정을 위협했습니다. 1552년 임꺽정이 체포되어 처형했지만 외부의 침략은 계속 되었고 조선은 국경을 지키기 위해 육군과 수군을 모두 동원해야했습니다.

 

죽음

명종은 숙청으로 추방된 사림파들을 소환해 재등용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한 뒤 개혁을 시도했으나 불과 2년만에 후사가 없이 사망하게 됩니다. 훗날 선조인 하성군은 명종의 부인인 의성왕후의 양자로 입양되어 1567년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강릉에 중전이었던 인순왕후와 같이 안장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왕 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조  (1) 2023.09.14
선조  (0) 2023.09.12
중종  (0) 2023.09.12
예종과 성종  (0) 2023.09.12
세조 : 수양대군  (0) 202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