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나라의 왕 들

성종_고려

by 붕스 2023. 10. 17.

성종(961년 1월 15일 ~ 997년 11월 29일)은 고려 6대 왕으로 태조의 4번째 왕비인 신정왕후의 아들, 태조와 6번째 왕비인 정덕왕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북한 판문군 징봉리에 위치한 성종의 강릉(출처 나무위키)

 

일생

성종은 961년 대종의 둘째 아들이자 태종의 손자로 태어났습니다.981년 사촌인 경종이 사망한 후 즉위하여 처음에는 지방 호족들에게 간섭하지 않고 신라의 귀족을 달래는것에 만족했으며, 신라 왕족의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982년 성종은 유학자 최승로가 쓴 비문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교식 왕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최승로는 성종이 태조로부터 물려받은 고려 4대 광종의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태조는 유교의 역사 고전을 강조했고, 이상적인 황제는 농민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생을 직접 겪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성종은 이 원칙에 따라 중앙에서 지방의 관리를 임명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모든 민간 무기를 모아 농기구로 만들었습니다.

 

성종은 고려를 중앙집권적인 유교 군주국으로 확립하려 했습니다. 983년 고려시대 대부분을 지배했던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교육을 감독하기 위해 각 목에 목사를 보내 새로운 관료제도에 지방 세력을 통합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지방 호족의 재능있는 아들들은 과거에 합격하여 수도의 관직에 임명될 수 있었습니다.

 

995년 성종 14년에 처음으로 나라를 10도로 나누었습니다.

 

993년 8월 하순 국경을 따라 있던 고려의 정보통은 임박한 거란족의 침공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종은 신속하게 군을 동원하여 3개 부대로 나누어 북서쪽 방어진지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의 전진부대는 청천강 남쪽 해안의 현재 안주 부근에서 북서쪽으로 진군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된 성종은 수도에서 평양까지 직접 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그해 10월 대규모 거란군은 소손녕장군 휘하의 80만명 가까운 병력(실제로는 최대 6만명정도로 추측됨)이 압록강을 넘어 고려를 침공하였고 고려는 첫 전투에서 패배하여 봉산군을 잃고 장군이 잡혀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고려군은 항복하지 않고 정면 공격에 맞서 퇴각하고 매복하며 거란군에 측면 공격을 하였습니다. 고려군은 이후 청천강에서 소손녕의 군대를 막았고 이러한 신속하고 단호한 저항에 직면하여 거란군은 고려를 정복하려는 시도는 많은 손해가 든다 판단하고 고려와의 화해 협상을 모색했습니다.

 

거란 장군 소손녕은 과거 발해 영토를 거란의 황제 성종에게 항복하라 요구했습니다. 그는 고려에 송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고려의 왕인 성종이 거란의 성종에게 신하의 지위를 받아들이고 매년 일정한 공물을 바칠것을 요구했습니다. 소손녕장군의 요구를 전면 거부하는 대신 개성의 조정에서는 거란의 최후 통첩에 대해 격론을 시작했습니다. 신료들은 항복하자고 하는 신하들과 항복하며 땅을 주자는 신하들로 나뉘었고 서희 장군은 소손녕의 조건 수용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개성에서 관료들이 언쟁을 벌이는 동안 소손녕장군은 청천강을 건너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이 공격이 곧 격퇴되자 조정에서는 강화론으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조정의 관료들을 달래기 위해 서희는 소손녕 장군가 직접 협상을 자원했습니다. 양측은 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송나라가 요나라에 가하는 강력한 압박이라는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희는 거란과의 협상에서 소손녕장군에게 거란은 옛 발해의 영토를 주장할 근거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고려왕조는 옛 고구려의 뒤를 잇고 있었기 때문에 발해는 당연히 고려의 영토에 속한다고 했고 서희는 교묘하게 숨겨진 위협으로 요동반도도 과거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었음을 소손녕장군에게 상기시키며, 거란의 수도 요양를 포함한 만주 영토는 고려의 것이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서희의 언변으로 압록강까지의 지역이 고려 영토로 편입되는것을 허용한다는 거란의 동의를 얻었고 소손녕장군과 거란군은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요나라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거란군이 압록강 남쪽의 영토를 고려의 성종에게 넘겨주면서 거란군의 1차 침공은 끝났습니다. 서희의 뛰어난 외교술은 현대 국제 정세와 지역에서 고려의 입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거란은 고려가 송나라와 동맹을 끊기로 합의하고 압록강 동쪽으로 영토를 철수하고 양도했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새로 획득한 북방영토에 요새를 건설함으로써 위상을 강화하고 송나라와는 계속 소통하였습니다.

 

고려 거란전쟁(여요전쟁)은 1018년까지 2차, 3차로 이어졌습니다.

 

죽음

성종은 997년 11월에 병으로 사망하였고 조카 목종이 뒤를 이었습니다.

 

능은 북한의 판문군 진봉리에 위치한 강릉에 묻혀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왕 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종, 문종, 순종, 선종_고려  (1) 2023.10.19
목종, 현종, 덕종_고려  (0) 2023.10.18
경종_고려  (0) 2023.10.17
광종_고려  (0) 2023.10.16
혜종과 정종_고려  (0) 202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