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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왕 들

태종 이방원

by 붕스 2023. 9. 10.

태종(1367년 5월 16일 ~ 1422년 5월 10일)은 조선 3대왕이자 세종대왕의 아버지로 즉위 전에는 정안군 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방원의 일생

1367년 이성계와 그 첫번째 부인인 신의왕후의 5번째 아들로 태어난 이방원은 1382년 관직을 갖게 되었고 운곡의 제자였습니다. 어린시절 그는 아버지를 도와 백성과 관리들에게 지지를 받았고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를 살해하여 조선 건국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왕자의 난

조선 건국에 크게 기여한 후 왕세자로 책봉되기를 기대했으나 아버지인 이성계와 정도전은 이성계의 8번째 아들이자 이방원의 이복형제인 이방석을 총애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조선의 이념적, 제도적, 법적기반을 만든 정도전이 조선을 왕의 명령에 따라 신하들이 통치하는 방식으로 여겼으나 이방원은 절대군주제를 통해 직접 통치를 원했고 이러한 차이는 결국 깊은 정치적 대립이 심화되는데 기여했습니다.

 

1398년 두번째 부인인 신덕왕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태조가 애도하는 동안 이방원은 반란을 주도했고 이 사건은 정도전과 정도전을 따르는 무리들의 죽음과 신덕여왕의 두 아들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사건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알려졌고 왕위 계승을 위해 아들들이 서로 죽인다는 사실에 놀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두번째 아들인 이방과를 후계자로 명하고 퇴위하여 정종이 두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이방원은 곧 왕위 계승자로 부상하게 되고 권력을 갈망하는 이성계의 네째 아들인 형 이방간과도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1400년 '1차 왕자의 난'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2등공신인것에대해 불만을 품고 박포장군은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것을 싫어했던 이방간을 이용해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이방원은 형의 군대를 격파하고 박포를 처형하고 형 이방간을 유배시켜버렸습니다. 이제 정종은 동생이 두려워 이방원을 왕으로 명하고 그해 퇴위해 마침내 이방원이 조선의 왕위를 계승하여 3대 왕이 되었습니다.

 

이방원의 개혁과 죽음

태종의 첫번째로 한 일은 왕족과 대신들이 누리던 사병을 폐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이 사병을 이용하여 왕이 되었기 때문에 후환을 없애기 위해 사병을 철폐함으로 다른 반란의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고 군사의 수는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 다음의 행동은 토지세에 관한 현행법을 개정하는것으로 숨겨져 있던 땅들이 발견되면서 나라의 부는 2배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태종은 강력한 관제정비를 통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체로 만들었습니다. 고려시대의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설치하였고 육조직계제를 시행하여 모든 결정에 왕의 재가가 있어햐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법령을 발포했습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태종은 피해를 입은 신하들이나 양반들에게 착취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는 사례를 듣기 위해 신문고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태종은 정몽주를 죽인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몽주를 영의정으로 추대하는데, 조선 건국에 큰 힘을 보탠 정도전은 조선의 500년 역사에서 비난을 받고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던 정몽주는 존경을 받는다는게 참으로 모순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태종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만들고 불교를 격하시켜 고려때에 누렸던 영광을 되찾지 못하게 되었고 많은 사원들이 폐쇄되었고 또한 수많은 재산들이 국고로 귀속되게 되었습니다.

 

외교정책에서 태종은 강경파로 북쪽의 여진족과 남쪽의 일본 해적을 공격하기도 하고 1419년 대마도 침공을 주도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또한 백성의 이름과 거주지를 기록하는(오늘날의 신분증이라 할 수 있는) '호패'를 만들어 인구의 이동을 제어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태종은 1418년 원경왕후의 셋째아들인 이도(세종대황)에게 왕을 물려주었지만 철권통치를 계속하면서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의 즉위를 도운 공신들중 일부를 처형하거나 추방했으며, 외척과 유력한 가문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부인 원경왕후의 네 형제들은 물론 세종대왕처가인 청송 심씨들 마저 처형했습니다.

 

퇴종은 퇴위 4년뒤인 1422년 5월 10일 수강궁에서 사망하였고 현재 서울 서초구의 헌릉에 있는 원경왕후 옆에 묻혀있습니다.

 

태종은 많은 충신들과 공신들, 외척들을 숙청하면서도 여러 개혁과 통치로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 외교적인 노력으로 국방도 안정되었으며 왕권을 강화한, 어떻게 보면 무자비한 군주이기도 하고 나라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진 왕으로 한국의 역사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 중 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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