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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와대

by 붕스 2023. 9. 9.

요약

청와대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1948년부터 2022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하는 건물입니다.

 

 

청와대는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여러 건물이 밀집해 있는 복합시설로 현대적인 건축요소와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청와대는 본청 청사, 대통령 관저, 영빈과, 춘추관, 기자회관, 사무국 건물로 구성되었있고 전체 규모는 25만 평방이터에 이릅니다. 청와대는 조선왕조의 왕실정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고 행정부 역할을 하는 국내에서 가장 보호받는 관저 중 하나입니다. 2022년 5월 윤석열은 청와대를 관저와 집무실로 사용하지 않고 공원으로 전환했습니다.

 

청와대의 역사와 현재

청와대 터가 위치한 시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곳도 유명한 곳으로 주목받았던 곳입니다. 풍수지리자 김위재는 '삼각산은 남북을 바라보는 산인데 그 산맥은 산맥이 서너개인데 유명한곳을 지키고 있으니 삼각산에 의지해 성을 쌓아 수도를 정하면 9년뒤 사해가 와서 공을 바친다'고 하였고 이로써 당시 숙종은 남경을 설치하고 궁궐을 짓게 하니 현재 학계에서는 지금의 청와대의 자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선 태조가 건국한 후 새로운 수도로 지정된 곳은 한성이다 그 후 1394년에 새로운 궁궐이 세워졌고 장소는 고려 남경의 궁터 근처였습니다. 현재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 북쪽에 해당하고 당시 이곳에는 충순당과 지로정 등의 사찰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소실된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있었으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 주도로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신문문 바깥과 현재 청와대에 지지대를 세웠다. 이후 뒤에는 용문당, 용무당 등의 건물이 세워졌고 이때 경문당도 세워졌습니다. 경무대는 왕의 휴식처인 오은각을 비롯한 32동의 건물이 있었고 용문당에서는 과거 축제가 열렸고, 용무당에서는 군사훈련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27년 경무대를 비롯한 뒤에있는 많은 건물들이 철거되었고 1939년 경복궁에 있던 총독부관저를 현재 청와대부지로 옮겼고 해방 이후에도 미군의 John Haji에 의해 그의 관저로 사용되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이승만은 총독부 관저를 경무대라 명명하고 대통령 관저로 사용한 바 있습니다.

 

이승만의 퇴진으로 대통령이 된 윤보선은 1960년 12월 청와대로 이름을 지었고 '경무대'라는 이름은 독재와 부패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면서 바뀌게 되는데 윤보선이 위촉한 김영대는 화령대와 청와대 두 가지의 이름을 제안했고 윤보선은 학국 고유의 문화를 대표하기 위해 청와대로 선택했습니다. 박정희가 집권한 뒤 노란색은 더 귀한색이라며 노란색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있었지만, 박정희는 이를 일축했습니다.

 

박정희정권 당시 청와대 건물은 1층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었고 2층은 대통령 가족의 거주공간이었으나 건물이 좁고 노후해 박정희정부 시절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노태우정권에서 2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두어 1991년 9월 현재 본관과 관사, 춘추관 등을 건설하고 김영삼 시대에 낡은 본관이 모두 철거되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해 본관 구조를 바꾸려했지만 실패하고 박정희가 1975년 건설한 전시 대피시설을 2003년에 보수하고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지하벙커)로 바꿨습니다.

 

그동안 청와대가 대통령 제국주의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많은 대통령들이 청와대와 관저를 이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김영삼은 이전 군사독재시절의 상징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초로 이전을 추진했습니다. 김영삼은 광화문 인근 정부서울청사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루지 못했지만 청와대 앞 도로와 인왕산을 일반인에게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궁정동과 삼청동에 위치한 12채의 안전가옥을 철거하고 시민공원인 무궁화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김대중은 정부서울청사와 정부과천청사에 관저를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했으나 보안과 비용의 문제로 중단하고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칠궁을 개방하는 조치를 취하고 청와대 관람 범위를 단체관람에서 개인관람과 외국인관람으로 확대했습니다.

 

노무현은 청와대를 포함한 모든 정부 부처를 청와대 이전을 넘어 세종시로 옮기려했으나 헌번재판소의 신행정수도법 위헌 결정으로 이전에 실패하게 되고 이후 노무현은 경복궁의 북문인 신문문과 북악산성로를 개설하였습니다.

 

이명박때도 사무실 비서실 보안실 이전이 검토되었지만 비용과 국회의 비승인으로 중단되고, 문재인은 광화문 대통령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취임 후에 안보와 비용의 문제로 취소되었습니다. 대신 청와대 앞 도로와 임시 개방했던 북악산 성곽길이 전면 개통되었습니다.

 

윤석열은 청와대 이전을 공식발표했으나 서울청사의 이전은 보안상의 문제로 어려워 대신 용산구에 있는 국방부로 청사를 이전하게 되어 현재 국방부가 대한민국의 청와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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